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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음 칼럼] 냄비를 닦으며

by 1코노미뉴스 2022. 1. 5.

[1코노미뉴스=강한진 나음연구소 소장] 아차 하며 달려가 불을 껐으나 이미 늦었다. 탄 냄새와 연기가 집안에 가득하다. 냄비 속은 시커먼 숱이 됐다. 간단히 요기할 요량으로 냄비를 불에 올려놓고 잠시 딴짓하다가 벌어진 소동이다.

갑자기 화가 난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잦아져서다. 아내가 가끔 그러더니 나도 점점 그런다. 앞뒤 창문을 한참 열어 두어도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는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아내의 짜증. 아끼는 냄비만 골라 태워 먹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게 태운 냄비의 뒤처리는 모두 내 몫이다. 아내는 손목이 매우 약하다. 골격이 약한 데다가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해서인지 바람만 불어도 아파한다. 류머티즘을 앓고부터는 무거운 일, 힘쓰는 일은 아예 내 몫이 되었다. 무 썰기부터 손목의 힘을 쓰는 일은 죄다 내 일이다.

재주가 없어도 자꾸 하면 손에 익는다. 이제는 탄 냄비 처리하는 약간의 요령과 지혜도 생겼다. 사실 별것 없다. 냄비를 식힌 다음 나무젓가락으로 냄비 안의 탄 것을 걷어내고,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한 국자씩 넣고 물을 충분히 채워서 5분쯤 끓인다. 다시 나무젓가락으로 긁으면 탄 것 대부분이 떨어져 나간다. 그래도 강하게 붙어서 남은 것은 수세미로 문질러서 벗겨낸다. 뭐 그리 대단한 비법도 아니고, 모두 다 아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키려고 하는 다음의 다섯 가지다.

첫째, 화를 내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이나 아끼는 냄비가 타면 당연히 속상하다. 그런데 이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면 그것은 냄비가 아닌 내 맞은편 사람을 향하게 된다. 세상에 분노로 해결되는 일이 파괴 말고 무엇이 있을까. 화는 내 소중한 사람에게 날아가서 상처를 입히고, 큰 분노와 반발이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화를 누르며 흔쾌한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일부러 좋은 표정을 하고 좋은 말을 한다. 딱 1분만 그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다.

둘째, 빨리 해치우려고 서두르지 않는다. 탄 냄새가 진동하고 시커먼 것이 눈앞에 있으면 속이 상한다. 당장 없애고 싶다. 빨리 처리하는 방법은 많다. 그냥 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가장 어리석은 방법일 것이다. 세상일은 그 일의 가치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이루어진다. 탄 냄비도 예외가 아니다. 먼저 냄비가 식어야 하고, 안의 탄 것을 처리하는 데도 시간과 노고가 들어간다. 그동안은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그것이 두 번째의 요령이다.

셋째, 쉽게 해결하려는 유혹을 이긴다. 처음 탄 냄비를 닦을 때 어떻게 하면 쉽게 빨리 그리고 깨끗하게 탄 것을 벗겨낼까만 신경 썼다. 그래서 쇠숟가락으로 긁고 강한 화학 세제를 부어 쇠 수세미로 박박 밀었다.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반대급부가 있었다. 탄 것은 벗겨졌으나 냄비도 망가졌다. 코팅이 벗겨지고 상처가 나서 음식이 더 잘 눌어붙고 타는 바람에 얼마 못 쓰고 버리게 되었다. 쉽고 빨리 해결하려다가 도리어 냄비를 망가뜨린 것이다. 그래서 나무젓가락과 베이킹소다, 일반 수세미를 쓰기 시작했다. 냄비가 상하지 않게 탄 것을 벗겨내는 것, 그것이 온전한 목적이다.

넷째, 다투지 않으며 누가 잘못인지 따지지 않는다. 아끼는 냄비가 타면 아내는 무척 속상해한다. 그리고 내게 짜증을 휘두른다. 아끼는 물건이 망가지면 그것이 비싼 것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에 묻은 마음과 기억이 상했을까 봐 속상한 것이다. 아내의 짜증에는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숨어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나로 맞받아 화내곤 했다. 일이 더 커졌다. 이게 아니다 싶어서 입 다물고 반응하지 않아 보았다. 무시한다고 서운해했다. 방법을 바꾸어 경청하고 공감하기 시작했다. 어려웠지만 크게 도움 되었다. 그래도 2% 부족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함께 하기다. 냄비를 닦는 동안 이러이러하게 도와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생각 외로 효과가 좋았다. 아내가 감정을 더 잘 가라앉혔고, 나도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실없는 농담으로 웃겨보려고도 했으나 유머엔 젬병인 나는 피식하는 웃음만 이끌어도 성공이었다.

다섯째, 뒤처리에 신경 쓴다. 조심스럽게 해도 남자의 손은 거칠다. 바닥에 붙은 검댕이를 벗기려면 힘을 써야 해서 물도 튄다. 싱크대에서 삼십 분 넘게 씨름을 한다. 어찌어찌 냄비는 살려냈으나 주방이 많이 어지럽혀졌다. 그러면 주위를 설거지하고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냥 냄비만 닦고 나온다면 수고는 했으나 칭찬은 듣지 못하는 결과가 되기 쉽다.

타지 않는 냄비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건 쉽지 않을 듯하다. 도리어 타지 않게 잘 쓰고, 설령 타더라도 덜 상하게 잘 닦아내면서 쓰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어쩌면 이것은 냄비만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도 비슷할 것 같다.

수많은 지식과 지혜, 노력이 모여져서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해 왔다. 그러나 결함 없고 완벽하며 모두가 만족하는 사회란 없을 것이다. 완벽한 것이라고 광고하는 냄비처럼 말이다. 어떤 불완전성이 발견되었을 때, 그로 인해서 피해 또는 불평등, 불합리가 드러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다. 

요즘 많은 사람이 언성을 높인다. 귀 기울여 듣노라면 그들이 쇠숟가락과 철 수세미, 화학약품을 들고 해법을 외치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감을 느낄 때가 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맞은편 사람들을 아예 집 밖으로 쫓아내려는 어조와 태도다. 강력한 묘수와 해결책을 외치는 목소리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강력한 묘수가 가져올 부작용이나 오랫동안 남을 영향은 언급하지 않는다. 명의로 존경받는 어느 의사의 ‘모든 치료제는 반드시 부작용을 수반한다’라는 말을 기억한다. 이 사회의 해법을 내놓는 목소리들은 부작용을, 그들이 아닌 국민이 감당하게 될 짐과 고통은 가린 채 밝은 그림만 보여주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그것은 ‘사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설령 모두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감내해야 할 것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한다 해도 말이다. 

오늘도 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방송 매체를 넘치고 있다. 그들 모두 수단이 아닌 진정성으로 국민의 삶과 마음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뽑혀도 우리의 장래는 밝을 것 같다. 

▶필자는 마음을 연구하는 곳 나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통이 필요한 분은 언제든 메일(hjkangmg@hanmail.net)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필자소개]

나음 강한진 소장은 경북대학교 공대에서 전자공학을,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과 상지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국내 기업에서 엔지니어와 관리자 경험을 쌓고 지금은 나음연구소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대인관계와 소통, 특히 갈등을 긍정적인 계기와 에너지로 전환하는 지혜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가정과 학교, 청년에게 있다고 믿으며, 가족의 평화와 학교(교사-학생-학부모)의 행복, 청년의 활력을 키우기 위한 일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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