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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음 칼럼] 마농지, 그리고 어머니

by 1코노미뉴스 2021. 12. 28.
  • 꼰대 아빠가 MZ세대 딸에게⑮ –가족에 대하여

[1코노미뉴스=강한진 나음 연구소 소장] 매해 4월 어머니는 마농지를 담그셨다. 우녕밭 마늘이 한참 줄기를 세워 푸른 키를 높이고, 땅속 뿌리 마늘 아직 덜 알이 찼을 때, 어머니는 손가락 마디만큼 마늘대를 자르고 항아리에 넣어 끓인 간장을 붓고 돌멩이를 얹으셨다. 

그리고 오뉴월 볕 아래 장독대에서 익은 마농지는 한여름 이후 밥상에 항상 자리했다.

어머니가 대나무 엮은 차롱에 보리밥을 싸고 자리젓과 된장, 콥데사니 마늘을 챙겨서 돌 많고 척박한 보리밭으로 갈 때 진드기처럼 따라붙는 나의 반찬은 마농지였다. 누나와 형이 연한 콩잎 위에 보리밥과 자리젓, 된장을 얹으면 나는 마농지를 한 꺼풀 벗기고 짭조름하게 단맛 물든 손가락을 빨며 점심을 먹었다.

초등학교 3학년 봄 소풍, 어머니는 보리밭 솥 안에 쌀과 좁쌀을 반씩 섞은 그릇을 넣어 밥을 지었고 마농지를 씻고 찢어 참기름과 깨를 뿌려서 도시락을 쌌다. 먼 길을 걸어서 바다가 보이는 일도봉 넓은 들에 앉은 친구가 소시지와 계란후라이를 먹을 때 나는 도시락을 열지도 않은 채 딴청하며 돌아다니다가 포장 안 된 먼지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도 어김없이 상 위에 올라 있는 마농지를 나는 먹지 않았다. 그러는 나를 어머니는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셨다.

스무 살에 떠난 고향, 대학가 하숙집과 자취집으로 옮겨진 내 삶에 선후배와 어울린 식당 안주와 막걸리가, 연인과 마주한 카페의 커피가 들어왔다. 회사의 구내식당 단체식과 저녁 회식, 치킨과 햄버거, 라면, 부대찌개 등 페스트푸드와 단짠 메뉴로 혼란스러우며 고향의 맛은 더 잊혀져 갔다. 결혼과 아이들이 자람에 따라 메뉴의 선택 주도권도 흐르다가 점차 맛있는 음식에서 건강한 식사로 관심이 옮겨갔다. 

그리고 아내의 메뉴도 영양식에서 건강식으로, 또 자연식으로 바뀌었다. 그 무렵 환갑을 넘은 어머니는 더 이상 우녕밭을 가꾸지 않으셨다. 가끔 마주하는 고향의 밥상에도 자리젓과 마농지 대신 짙은 양념의 김치와 고기반찬의 자리가 넓어져 갔다. 낡은 집 고장 난 문틀의 창호지처럼 어머니도 조금씩 바래 갔다.

아이들이 다 떠난 지금 아내와 내가 마주하는 상은 갈수록 단출해져 간다. 강한 음식보다는 순한 음식이, 복잡한 조리보다는 간단한 손질이 더 편하다. 아내는 손주에게 줄 간식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고 주말을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산사의 정갈한 음식과 맑은 솔잎차를 만났다. 몸에 쌓인 무거운 것이 씻기는 듯했다. 순하고 무던한 양념과 손맛이 생소하지 않았고 기억 속 깊이 있었던 것인 듯 편하고 익숙했다.

매일 지나는 산책로 곁 밭의 두어 고랑 마늘이 푸르다. 유채꽃이 노랗게 뒤덮을 무렵 우녕밭에 허리 숙여 호미질하던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맞아. 지금쯤 어머니가 마농지를 담그셨지. 간장 끓이는 냄새가 고약했었어. 고향 여동생과 통화하다 마농지 담갔느냐고 물었다. 눈치 빠른 여동생이 안 담근 지 오래되었으나 오빠가 먹고 싶다면 조금 담가 보내겠다고 했다. 괜히 무안해져 괜찮다 얼버무리면서 얼른 전화를 끊었다.

한 보름 지났을까. 이른 아침인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스마트폰에 뜬 동생 이름을 본 순간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전화한 적 없는데 싶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철렁했다. 낡은 문틀의 창호지가 바람에 떠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조금 주저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과수원에 농약 작업을 하러 가는 길이라 일찍 전화한다며, 오늘 택배로 마농지를 보내니 두어 주 상온에 충분히 익힌 다음 먹으라고 했다. 

놀랐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으며 길게 한숨이 나왔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무슨 일 있느냐고 조심스레 동생이 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렇다고 얼버무리며 전화를 마쳤다.

이틀 후, 동생의 말대로 택배가 도착했다. 정성스레 묶은 포장 속에 검붉은 간장 소스에 잠긴 마농지 두 통이 들어 있었다. 한쪽을 꺼내어 입에 넣고 씹었다. 오드득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혀 깊이 흘러드는 짭조름한 단맛. 오뉴월 까시랍던 보리 이삭과 땡볕 덥던 학교 가던 자갈길, 오가면서 따먹던 보리 딸기, 마음 바쁠 때는 보이지 않다가 조금 가라앉으면 다시 보이는 기억 저편 것들이 서서히 떠올랐다. 그리고 그 뒤에 배경인 듯 그림자인 듯 어머니가 계셨다. 

한 해 한 해 저무는 꽃 같은, 이제는 마농밭 호미 잡을 힘이 없으신, 고작 전화 목소리에도 반기시는, 어렵사리 오신 아들 집에서 이틀 지나면 답답하다며 기어이 돌아가시는, 이제는 낡은 창호지처럼 빛바래신 어머니. 그날 아침 나의 가슴을 철렁인 것은 오도독하며 목젖을 넘던 마농지의 짭조름한 단맛처럼 검디 검붉은 어머니에 대한 부채감이었다.

▶필자는 마음을 연구하는 곳 나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통이 필요한 분은 언제든 메일(hjkangmg@hanmail.net)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필자소개]

나음 강한진 소장은 경북대학교 공대에서 전자공학을,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과 상지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국내 기업에서 엔지니어와 관리자 경험을 쌓고 지금은 나음연구소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대인관계와 소통, 특히 갈등을 긍정적인 계기와 에너지로 전환하는 지혜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가정과 학교, 청년에게 있다고 믿으며, 가족의 평화와 학교(교사-학생-학부모)의 행복, 청년의 활력을 키우기 위한 일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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