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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훈 칼럼]기러기아빠 이야기 싱글라이더, 내려놓으니 홀가분한 가장의 짐

by 1코노미뉴스 2020. 8. 20.

[1코노미뉴스=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1969년 나온 가수 이미자의 「기러기아빠」가 유행한 이후 ‘기러기’는 부모 잃은 아이들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기러기가족 봄이 오면 도로공사에 밀려... 갈 곳 잃은 고아들의 보금자리(경향신문 1978년 2월 7일 7면 기사)」를 보면 부모 없는 아이들을 ‘기러기’로 지칭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기러기’는 남편과 이혼하거나 사별한 엄마를 상징하는 용어가 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당시 이혼ㆍ사별 여성 대상 「기러기교실」을 운영하였다. 

가장이자 남편, 아버지 없이 남은 가족을 지칭하는 용어였던 기러기가 남성에게 부여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보았던 KBS 2TV ‘부부 클리닉-사랑과 전쟁’ 2001년 88회에서 다룬 ‘기러기아빠’는 자녀의 조기유학 때문에 가족과 헤어져 사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자녀교육을 위해 아이들과 아내를 외국에 보내 놓고 혼자 국내에 남아 유학비용을 버는 이른바 기러기아빠들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습니다.」라는 2002년 KBS 뉴스는 ‘기러기아빠’ 1인가구의 급증세를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하늘로 간 기러기아빠... ‘기러기 아빠’ 생활의 후유증으로 방황하다 가정을 잃게 된 30대 가장이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서울신문 2003년 7월 5일).」는 식의 소식도 종종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기러기아빠’ 자체를 알려주는 통계는 없지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이유로 조기유학을 떠난 초중고등 학생 수를 보면 ‘기러기아빠’들의 증감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조기유학생 수는 매년 1만여 명 수준이었다. 2007년 조기유학생 수는 2만 명을 넘어 정점에 달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kess.kedi.re.kr). 이에 비례하여 ‘기러기아빠’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식어갔다. 매년 수백 건에 달했던 ‘기러기아빠’ 관련 기사가 최근 몇 년 사이 수십 건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2017년 개봉한 「싱글라이더」는 ‘기러기아빠’ 이야기다.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영어를 배우면 보장될 것 같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다. 그래서 가족은 ‘아빠’와 ‘엄마, 아이’로 갈라진다. 아빠 강재훈(이병헌)은 한국에 남고, 엄마 이수진(공효진)과 아이는 호주로 간다. 모든 기러기아빠들이 그러하듯이 아빠는 열심히 일해서 가족의 생활비를 보낸다. 엄마와 아이는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영화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선한 아빠, 아빠가 보내주는 돈으로 인생을 즐기는(?) 나쁜 엄마」 구도를 거부한다. 엄마와 이웃집 남자와의 관계는 그리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1999년 개봉한 「식스 센스(Sixth Sense)」가 너무나 강렬했던 마지막 반전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재훈과 지니(안소희)가 이미 죽은 사람일 것이라는 짐작은 영화 좀 본 사람들은 쉽게 할 수 있었을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구성이 치밀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좀 지나치다. 증권회사 지점장으로서 열심히 가족 부양을 위해 살아간 한국남성 ‘가장’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영화는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재훈은 한국에서나 호주에서나 가족을 혼자 지키려했다. 수진과의 사랑도 혼자 지키려 했다. 그렇게 혼자 지키고 싶었지만 무기력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지켜볼 수밖에 없는 가장’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웃집 남자와 관계를 맺는 수진의 모습을 가장이자 남편인 재훈은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모습이다.  

그러나 영화는 가장의 무기력함 그 자체를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니에게 “나도 오늘 아침에야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아주 힘들었어요.”라는 말로써 가장의 짐을 벗어놓는 변화를 보여준다. 아이와 엄마가 늘 즐겁고 행복하길 바라는 ‘한국남성’의 진심은 그렇게 전달된다. 수진은 재훈의 모습을 “당신 다 보고 있었구나.”라면서 느낀다. 그렇지만 남편에게 현재 내 모습을 들켰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빠도 같이 있으면 좋겠어.”라는 아들 진우와 같은 마음이다. 재훈이 변하는 사이, 수진도 가장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에서 변하기 시작한다.

호주에 있는 가족에게 가는 비행기표만 사놓고 위스키와 약물 과다 복용으로 결국 죽어버린 가장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 영화는 비극이다. 특히 1인가구 ‘기러기아빠’에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재훈이 가장의 모습에서 분리되는 순간, 가장의 권위로써 개입하지 못하는 순간, 오히려 가족의 행복이 눈에 들어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이 영화는 희망이 된다. 
영화는 죽었지만 죽지 않았던 재훈을 통해 가장의 껍데기를 벗겨냈다. 가족의 행복만 남겼다. 이제 남성들이 가장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많은 길이 점점 열리고 있다. 함께 벌고 돌보며 결정하는 삶이다. 엄마와 아빠 중 누가 세대주인지 아이가 알 수 없을 때는 언제쯤 올까? 그때가 되면 지금의 아이들이 서로를 더욱 존중하며 행복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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