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코노미뉴스=정희정] 팍스(PACS)는 시민연대계약(Pacte civil de solidarité)의 줄임말로 동거하는 커플을 사실혼으로써 국가에서 공식 인정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여기서 ‘동거하는 커플’은 이성, 동성 모두 포함된다. 혼인서약을 한 혼인관계는 아니지만 결혼한 부부처럼 사실혼 관계로써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예로 팍스 커플은 소득세, 사회보장급여 등에 있어서 법적으로 인정 받으며 결혼한 커플과 유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일반 동거 커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부분이다.
팍스제도가 탄생한 지난 1999년 이후 팍스 커플은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8년도에는 총 20만9천 커플이 팍스로 등록했다. 같은해 결혼한 부부는 23만5천 건으로 점점 많은 프랑스인들은 팍스 제도를 선택하고 있다.
팍스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프랑스에서는 1990년대 말 혼인 이전에 동거하는 커플들의 비중이 87%로 크게 늘었다. 덩달아 혼외 출산 비율도 늘었는데 1990년대 초반과 비교해 3.9%에서 7.3%로 급격히 상승했다. 동거 커플들의 자녀들을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할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성문화에 대해 일찌감치 개방적이었던 나라답게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찾아줘야 한다는 움직임과 맞물려 팍스는 공식 제도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동성커플 보다 이성커플이 팍스를 더욱 많이 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럼 결혼을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공식 동거인이 되려고 하는 걸까. 프랑스는 이혼율이 꽤 높은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이혼은 서로의 합의를 거치더라도 간단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개인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비된다. 조금씩 절차가 덜 복잡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팍스와 비교할 바가 안된다. 팍스의 경우 공식적인 동거 생활을 종료하고 싶다면 커플 중 한 사람의 요구로도 관계는 종료될 수 있다. 절차 역시 관공서를 통해 간소하게 진행된다.
프랑스에서 결혼식은 교외에 위치한 성당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1박 2일로 거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용은 많이 들지만 이 나라에서도 결혼은 대사다. 결혼식 전에는 시청이나 구청에서 혼인선서와 혼인신고를 먼저 진행하는데 이때 가족이나 친구 등 정말 중요한 사람들을 초대한다. 특히 신랑, 신부는 결혼서약시 서로의 증인이 되어 줄 사람도 필요하다. 그만큼 결혼은 중대하고 책임감있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팍스는 사실혼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지만 혼인한 사이는 아니다. 때문에 팍스 커플은 서로를 남편, 아내로 지칭하지 않고 남자친구, 여자친구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에 구속되지 않은 채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프랑스인들의 문화를 정말 잘 보여주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처음 팍스를 알게 되었을 때 미간을 찌푸린 채 ‘굳이 왜 결혼을 하지 않고 팍스야?’라고 의구심을 품었던 나같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주변의 유럽 여성 친구들이 남성 친구들 보다 더욱 팍스에 긍정적이었다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산물을 위한 결혼식을 거부하고 결혼제도에 구속되기 싫어하는 현대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비혼주의자가 늘고있다. 팍스는 새로운 커플제도 혹은 발전된 커플제도로써 이들을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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