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코노미뉴스=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2005년 개봉하여 극장 공식 관객 수가 200만 명에 근접했던 「연애의 목적」이 있다. ‘잘 취하고 자취하는 여자’ 미술교생 최홍(강혜정)과 학교 영어교사 이유림(박해일)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상이다. 그런데 이 일상을 ‘뻔뻔한 남자와 당돌한 여자의 진짜 연애 이야기’로 보는 시각도 있고 ‘지금은 절대 개봉할 수 없는 한국영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유림은 결혼할 여자가 다른 학교 교사로 있고, 최홍도 결혼할 의사 남자친구가 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순간 이유림은 최홍에게 ‘질척하게’ 들이대고 최홍도 “나랑 자고 싶으면 50만원 내라.”는 식으로 강도 높게(?) 대응한다. 남자가 성적 욕망을 그대로 표현하고 이에 대해 ‘당돌한’ 반응이 오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연애의 목적’을 발견하였다. 반면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성희롱, 성추행, 강간으로 이어지는 젠더폭력의 세계를 보았다. 지금 한국사회 분위기로는 후자 관점 목소리가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상 목소리를 크게 내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진솔하며 직설적이며 진짜 연애 이야기’에 대한 추억을 이 영화에서 찾아내는 많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남자가 마셨건, 여자가 마셨건 혹은 함께 마셨건, 대체로 청춘남녀가 술을 마시고 취한 분위기에서 남자가 “열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 없다.”는 식으로 들이대면서 이루어지는 섹스 장면으로 영화 내용이 이어진다. 혼자 살고 게다가 술도 잘 마시고 잘 취하는 여자라는 설정이 우연은 아닌 듯하다. 남자가 여자를 욕망하는 어떤 일정한 유형이 반영되어 있는 듯 하다. 언젠가 KBS 개그콘서트에서도 ‘혼자 사는 여자’에 남자들이 반색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그 모습에 관객과 시청자가 웃어대는 시간들이 있었다.
2005년 등장했던 ‘잘 취하고 자취하는 여자’는 2012년 「건축학 개론」에 다시 한번 나왔다. 「야 별거 없어. 여자는 일단 술먹여서 취하게 만들어. 취하면 업어. 침대에 눕혀. 끝!」 동아리 후배들에게 여자와 연애하는 방식을 늘어놓던 선배 재욱의 이 대사를 많은 독자들이 기억할 것이다. ‘잘 취하는 1인가구 여성’은 2017년 「오늘의 유머」에 ‘남자들의 이상형’으로 공식 등극하였다. 반면 결혼정보 회사 가입 정보에서 1인가구 생활 경험이 있는 여성의 경우에는 ‘감점 요인’이 된다는 보도도 있었다(“자취·유학 경험 있으면 감점... 황당 결혼정보회사”, 국민일보 2013년 11월 28일,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794282). ‘잘 취하고 혼자 사는 젊은 여자’는 남자가 욕망하는 대상이지만, 남자의 배우자는 될 수 없다는 준엄한(?) 기준이다.
다시 영화 「연애의 목적」으로 돌아가보자. “연애의 목적은 무엇일까?” 섹스할 상대를 만나기 위해, 말벗이 필요해서, 여가를 함께 보내기 위해, 결혼하기 위해, 혹은 모두 다? 너무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남자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성범죄감이다. 남자의 행동은 성추행과 강간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런데 여자의 반응이 그다지 피해자스럽지 않다. ‘피해자스러움’ 논쟁을 떠나서 헷갈린다. 여자가 결국 남자의 성추행을 학교에서 문제 삼았고 남자는 교사에서 학원 강사가 되었다. 그 둘 사이는 그러면서 다시 연애하는 사이로 돌아간 듯 하다. 마지막에 최홍은 더 이상 교사가 아닌 이유림에게 “같이 잘래?”라고 물어본다.
아무리 성희롱ㆍ성추행 같은 언행도 맥락에 따라 아닐 수 있다. 젠더폭력 가해자의 변명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다. 연애하는 사람 앞에서 노출하는 나의 모습, 내 앞에서 노출되는 상대방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너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적인 것은 정치적이다.”라는 잣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다. 「연애의 목적」 시작과 끝 내용이 잘 연결되지 않는 듯, 혼란스러운 느낌이 드는 이유이다. 이유림은 얼마만큼 파렴치한 젠더 폭력 가해자일까? 최홍은 얼마만큼 젠더폭력 피해를 본 것일까?
「연애의 목적」이 혼란스럽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눈에 들어온다. 목적이 무엇인지 여부를 떠나 이야기의 주인공은 남자다. 남자는 먼저 나서고 여자는 반응한다. 「연애의 목적」은 남자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이다.
그런데 이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여자가 ‘아니(No)’라고 했을 때 남자가 그 이상을 나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사회가 알게 되었다.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예전에는 초중등 교과서에도 나왔던 그 표현들이 남성 중심 사회구조에서 갖는 의미를 문제시할 정도로 사회는 변하기 시작했다.
공연히 건드려보고 껄떡대면서 웃을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여자가 ‘아니(No)’라고 할 때 멈추어야 함을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있다. 그러나 ‘아니(No)’라는 답을 들을 언행 자체를 아예 시도하지 않는 변화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취하면 취한대로, 혼자 살면 혼자 사는대로,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으면 된다. 새로 쓰는 「연애의 목적 Ⅱ」를 기대해본다.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희선 칼럼] 日, 코로나로 지친 1인 고령 가구 위한 다양한 대책들 (0) | 2020.12.11 |
---|---|
[박민선 칼럼]현 시점에서 1인 가구 위한 지원과 실태조사 필요한 이유 (0) | 2020.12.10 |
[박진옥 칼럼]무연(無緣)의 도시 서울, 600분의 무연고사망자분들을 배웅하며 (0) | 2020.12.04 |
[우문식 칼럼] 회복력 강한 사람이 미래를 주도한다 (0) | 2020.12.01 |
[천기덕 칼럼] '내일의 꿈'…빠른 학습과 주도적 선제력으로 나아가자 (0) | 2020.11.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