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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훈 칼럼]「아이」, 1인 가구로 시작하는 삶

by 1코노미뉴스 2021. 6. 21.

[1코노미뉴스=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아이(2021년)」는 출생신고도 안된 생후 6개월 아이 혁이를 중심으로 세 여성이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영화다. 보육원 출신 ‘고아’이면서 보육을 전공하는 대학생 아영(김향기)이 있다. 아들 혁이와 먹고 살기 위하여 유흥업소에 나가는 미혼모 영채(류현경)가 있다. 영채가 나가는 업소 사장 미자(염혜란)는 무심한 척 하면서도 영채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후원자다. 

영채가 밤에 일을 나간 사이에 아영은 혁이를 돌보는 알바를 시작한다. 혁이의 불법 입양과 그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하나가 된 세 여성은 혁이를 함께 키우는 ‘사회적 가족’으로 재탄생한다. 감동이 있는 영화다. 간간이 튀어나오는 대사 속 유머가 어려운 삶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아이」는 또 다른 아이 아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영의 삶 속에 투영된 한국사회의 모습은 그리 감동적이지 않다. 

아영은 ‘보호종료아동’이다. 아르바이트로 아이를 돌보는 대학생이지만 아영도 여전히 ‘아동’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게 더 좋을 것 같은 부모(영채의 말)’가 버린 후 보육원에서 자랐다. 18세가 넘어서 보육원을 나왔지만, 대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좀 더 지원을 받는 ‘보호종료아동’이다.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함께 살 수 없는 아동은 아동복지시설에서 살게 된다. 아동복지시설에는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위탁가정’이 있다. 비교적 많은 수의 아동이 사는 아동양육시설을 흔히 보육원이라고 부른다. 공동생활가정은 최대 정원이 7명을 넘지 않는 소규모 그룹홈이다. 아동에게 가정과 같은 성장 환경을 제공함을 목표로 한다. 대체로 선진국에서는 아동양육시설이 적고 공동생활가정이 많다. 위탁가정은 친부모를 대신해 아동을 일정 기간 돌봐주는 일반가정이다.

아동복지법에 따를 때 아동은 ‘18세 미만인 자’이다. 그래서 18세가 되면 아동은 살던 곳을 나와야 한다. 다만, 대학을 가거나 직업훈련을 받는 경우, 장애ㆍ질병 등의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시설 거주 기간을 1년 이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 이렇게 사는 아동을 ‘연장아동’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1년 안에 대학을 졸업하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 나이 정도에 부모의 보호와 지원을 받지 않고 완벽하게 독립하는 청소년이 얼마나 될까? ‘연장아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년 법적 제한을 넘어서 국가는 주거, 학비와 생활비, 직업훈련, 상담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른바 ‘보호종료아동’ 대상 사회복지 프로그램이다. 

18세가 되어 1인 가구로 살아야 하는 보호종료아동은 자립정착금 명목으로 500만원 정도 현금을 한번 받는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800만원을 주기도 한다. 보호종료일 기준 3년까지 월 30만원을 주는 자립수당도 있다. 그런데 한번 상상해보자. 함께 살던 부모님이 말씀하신다. “이제 18세가 되었구나. 500만원을 줄테니 이제 나가서 살아라. 집은 대한토지주택공사(LH)에서 하는 임대주택을 알아 보거라. 앞으로 3년 동안은 월 30만원을 주기는 하겠다.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 대학교를 가든 취직을 하든 나는 더 이상 모르겠다. 그리고 너는 이제부터 무연고자가 된다. 너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보호자로서 서명을 해줄 사람은 없다.”

후원자 지원과 당사자 부담으로 월세를 내고 살면서 아영은 대학교를 다닌다. 보육(아동학) 전공이다. 대학교 등록금은 아마도 국가장학금을 통해 조달할 것이다.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해서 월 120만원을 벌었다. 그런데 일해서 번 소득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다시 지원을 받으려면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었다는 퇴직 증명서를 주민센터에 내야 한다. 당분간 월 30만원의 자립수당으로만 살아야 한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세탁기는 열악한 주거 환경의 상징이다. 아영과 같은 보육원 출신 경수가 죽었을 때, 그 누구도 경수의 보호자로서 장례를 치를 수 없다. “우리가 경수의 가족이다.”는 아영의 외침은 법적으로 허무할 뿐이다. 경수는 결국 무연고자 장례 절차에 따라 한 줌의 재가 된다. 아영은 혁이를 통해 사회적 가족을 찾았다. 그러나 대다수 보호종료아동은 사회적 관계 형성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경험한다. “고아면 어때?”라고 사회는 말하지만, 뒤에서는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또 이들을 배제한다.

해마다 3~4천 명 수준의 보호종료아동 1인 가구가 생긴다. 한국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든 보호종료아동이 정부 지원에 따른 평균 수준의 설비를 갖춘 주거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 교육ㆍ직업훈련 과정을 이수하고 취업할 때까지 아르바이트로 번 돈 때문에 지원을 축소하거나 끊는 제도는 사라져야 한다. ‘디딤돌통장, 디딤씨앗통장, 희망디딤돌’ 같은 사업들이 효과가 있으려면, 보호종료아동이 스스로 일해서 번 돈은 한푼도 지원 수준과 연계해서는 안된다. 스스로 번 돈을 지원 조건과 연결시키면서 이런저런 소규모 현금급여를 만드는 것은 자립능력을 깎아 내리는 효과만 낼 뿐이다.

「아이」에서 아이들(혁이와 아영)은 모두 새로운 가족을 얻었다. 혁이를 가운데로 하고 아영, 영채, 미자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 ‘보호종료아동’ 1인 가구들이 사회적 가족으로 재탄생하는 현실을 보기 어렵다. 게다가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취업을 하기도 그리고 스스로 번 돈으로 미래를 위한 자산 형성을 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현금 얼마를 손에 넣어주는 보여주기식 사업은 그만 하자. 스스로 번 돈을 숨기지 않고 떳떳하게 모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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