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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음 칼럼] 그가 가장 아픈 사람일지도 몰라

by 1코노미뉴스 2021. 10. 8.

꼰대 아빠가 MZ세대 딸에게 ⑪가정폭력에 대하여

[1코노미뉴스=강한진 나음연구소 소장]

어느 날 운전 중 전화가 왔다. 

"무서워 죽겠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평소 상담을 청해오던 내담자다. 근무 중 숨어서 전화를 걸었다는 그녀의 목소리는 핸즈프리를 넘어 필자에게도 느껴질 정도로 심하게 떨렸다. 위급함이 느껴지는 상황에 통화를 이어가고자 필자는 급히 차를 세워, 이야기를 들었다.

발단은 이랬다. 최근 학교폭력 사건을 일으킨 중학교 2학년인 딸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핸드폰만 만지며 빈둥거리다가 남편의 화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말다툼이 벌어졌고 화가 폭발한 남편은 딸의 머리채를 잡고 휘두르며 폭력을 가했다. 도망쳐 나온 딸은 급히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담자는 이미 출근한 상황. 그런데 화가 덜 풀린 남편은 회사에서 일하는 내담자에게도 전화와 문자로 험한 말을 쏟아내며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분노한 남편의 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자칫 딸을 찾아내면 더 큰 사고가 날까 두려운 상황이었다. 

내담자의 남편은 결혼 초기부터 폭력적 성향을 보여왔다. 술에 취해 처음 시작된 가정폭력은 점차 심해졌고 내담자는 종종 친정집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참고 사는 게 능사가 아닌데 내담자는 이런 아픔을 끌어안고 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식에게도 가정폭력의 경험을 안겨주고 있었다. 

당장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조치를 그녀에게 전한 필자는 목적지에서 다시 전화하자며 마무리했다. 

일이 마무리된 후 많은 생각이 뒤죽박죽 맴돌았다. 그리고 예전에 보았던 기사가 생각났다.

폭력 가정에서 성장한 자녀는 폭력 없는 가정에서 성장한 자녀보다 가정폭력을 경험할 위험이 15배나 높다는 내용이다. 연구 결과 부부간 폭력을 행사하는 가정의 60~70%는 자녀를 학대한다. 가정폭력은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자녀가 아버지의 폭력을 무의식적인 두려움으로 오히려 정당화시키고 어머니를 비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게도 만든다. 폭력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부모 자식의 관계가 단절되기도 한다. 이들 중 남자는 자신을 공격자로 정체함으로써 성인이 되어 알코올, 약물중독으로 인한 자기학대에 빠지거나 폭력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갈등 상황에서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내어 폭력 상황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정폭력은 부부간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구조와 특성에 의해 세대 간 전이되는 것으로, 그 폭력이 자녀를 통해 대물림된다.(2007. 8. 10. 서귀포신문)

그리고 흑백영화 같은 어린 시절 장면이 떠올랐다. 필자 역시 그 기사의 사례가 될 뻔해서다. 

우리네 어린시절은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가정폭력이 흔했다. 필자의 아버지도 고분고분하지 않고 반항적이던 필자에게 폭력을 행사했었다. 그러기에 수십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아직 다 용서하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아버지도 아픈 인생의 굴곡을 살았던 한 남자였다고 머리로는 이해하나 여전히 애틋한 마음보다 원망과 미움이 더 크다. 

그런데 필자 역시도 어긋난 행동을 하는 아이를 볼 때 '훈육'을 떠올렸다. 폭력이 민주화의 열망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체험했고, 힘이 아닌 사랑과 인내와 지성만이 세상을 더 낫게 한다고 믿으면서도 폭력을 방법으로 떠올리는 이 동물적 반응 성향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속 깊이 새겨진 폭력의 문신이 영향을 준것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폭력은 우리를 아름답게 하지 않으며 도리어 추하게 한다. 매 맞으며 배운 것 중에 귀한 것은 없다. 부모는 가르치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말이 구차한 변명임을 이미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잘되지 않아 힘들어하는지도 모른다. 내담자의 남편 역시 폭력을 가하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불성실한 태도, 습관은 아이 본인의 마음가짐, 사고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건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매를 들어서라도' '난 저렇게 농땡이 치는 꼴 절대 못 본다. 패서라도 고쳐놓겠다'고 말이다. 스스로 더 힘들게 만드는 이 남자를 어떻게 하면 가족과 사랑을 키우는 자리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가정폭력의 가해자들, 어쩌면 더 빨리 도움받아 치료되고 회복되어야 할 사람이 아닐까. 어쩌면 필자도 용서받지 못할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무섭고 힘든 날이다.   

▶필자는 마음을 연구하는 곳 나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통이 필요한 분은 언제든 메일(hjkangmg@hanmail.net)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필자소개]
나음 강한진 소장은 경북대학교 공대에서 전자공학을,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과 상지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국내 기업에서 엔지니어와 관리자 경험을 쌓고 지금은 나음연구소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대인관계와 소통, 특히 갈등을 긍정적인 계기와 에너지로 전환하는 지혜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가정과 학교, 청년에게 있다고 믿으며, 가족의 평화와 학교(교사-학생-학부모)의 행복, 청년의 활력을 키우기 위한 일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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